상영당시에 굉장히 보고싶었는데 못봐서 아쉬웠던 영화다. 얼마전에 tv영화채널에서 방영해주는걸 보고 문득 떠올라서 이제야 보게 됐다.
처음 들었을 때 '소공녀'라는 영화제목은 딱히 끌리는 제목은 아니었다.
어렸을때 집에 소공녀라는 동화책이 있었는데 그 책은 나에게 어떤 여운도 남겨주지 못한채로 잊혀졌다.
부자였던 소녀가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가난뱅이가 되었다가 나중에 우연히 다시 부자가 되는 내용이다.
동화책에서는 주인공이 가난뱅이 시절에도 본인의 정체성인 귀족다움(?)을 잃지않는다는 게 훌륭하다고 말했었다.
동화니까 망정이지 사실 요즘 세상에 그런 친구가 있다면 어른들에게 못마땅한 시선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세상은 청년들이 악만 남아 바동거리는, 이른바 '생활력'을 갖추기를 원한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주제도 안되는데 취향과 정체성을 운운하다가는 '꼴값'한다고 질타당하기 십상이다.
"나때는 말이야~"
로 시작하는 그런 멸시 말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좋은 명함을 갖기위해서만 발버둥치는 삶과,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향유하는 삶.
누군가에게는 전자가 꼴값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후자가 꼴값이다.
당신은 어떤 쪽이 더 분수를 모르는 '꼴값'같아 보이는가?
소공녀는 그 '꼴값'의 정의에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다.
줄거리에서도 이야기하겠지만, 하루벌어 하루 살면서도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싶어하는 '미소'의 이름이 '웃음'이라는 뜻과 '작다'는 뜻을 둘 다 뜻할 수 있다.
주인공의 이름으로 탁월한 선택이다.
상영 당시 크게 흥행몰이를 하지는 못했던 듯 하지만, 소공녀는 전문가들에게도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
<상세 줄거리>
요즘 근무하는 곳은 친구 집.
정성을 다해 친구 집을 쓸고 닦고, 일당을 받았다.
"고마워"
친구도 말한다.
"내가 더 고맙지"
미소는 현관을 나서려다가 다시 머뭇거리며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쌀 좀 남는거 있어?? 집에 쌀이 떨어져서."
친구는 검은 봉지에 쌀을 소복하게 담아주었다.
봉지를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런데 봉지에 뚫린 구멍으로 쌀알들이 쏟아진다.
마치 내 월급마냥 순식간에 사라져버림...
집에 도착하고나서야 이 사태를 깨달은 미소. 허탈한 기분이다.
이렇게 꿀꿀할때 미소가 찾는 것은 위스키 한잔.
밥 사먹을 돈이 없어도 위스키는 사마신다.
그리고나서 잠들기전에 꼭 하는일이 있다.
이 영화 배경이 2014년으로 나오는데, 당시에 미소가 즐겨피는 에쎄 담배는 2500원이었던 듯 하다.
밥한끼, 위스키한잔, 담배한갑.
소박한 행복을 즐기고 남은 돈은 월세와 약값용으로 저축한다.
약을 먹지 않으면 머리가 몽땅 하얗게 세어버리는 질환을 앓고있다고 한다. 아마 머리뿐은 아닐거다. 눈썹, 속눈썹 전부 다겠지.
하여튼 어려운 살림에도 나름 저축까지하는 미소.
월세가 오르자 청소일자리도 하나 더 추가한다.
저녁때 집을 비우는 술집아가씨의 오피스텔을 청소하게 된 미소.
그러던 와중 2015년, 새해가 밝았다.
담뱃값도 올랐다.
좋아하던 담배 '에쎄'대신 가장 저렴한 '디스'를 구매했지만, 그래도 가격은 4000원.
그러나 결국 그녀의 낙인 술과 담배는 포기하지 못한다.
결국
"주인님! 저 집 뺄게요."
"방값 5만원 올렸다고 이러는 거니?"
"이것저것 다오르니 방법이 없네요."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 담담한 대화가 오간 후, 미소는 밀린 월세봉투를 내민다.
"고마워. 확인은 안할게. 잘가"
"안녕히계세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오랫동안 살던 집에서 나오게 되니 서러울 법도 한데, 미소는 가사도우미의 재능을 살려서 마지막 청소도 말끔히 해놓고 나온다.
1. 최문영
사람일 어떻게 될 지 몰라서 간호조무사 자격증까지 땄었다는 생활력 강한 그녀는 지금 대기업에 다닌다.
잠도못자고 쉬지도 못하는 생활이지만 그래도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기 위해 더 노력하고있다.
조무사 자격증은 이제 자기 팔에 링거 놓을때 쓰는 요긴한 재능이 됐다.
"나 좀 재워줄 수 있어? 하루만이어도 되고. 잠이랑 화장실만 쓸게."
"너.. 그정도로 돈이 없어?"
실제로 굉장히 피곤해보인다.
수액마저 다 맞지 못하고 사무실로 되돌아가야하는 그녀.
미소에게 미안해하며 자리를 뜬다.
미소는 한톨의 서운함도 없이 친구를 안아준다.
"괜찮아. 너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싶어서 왔어."
"여전하네"
이렇게 반가운 친구얼굴을 본것만으로 만족하고 두번째 친구에게로 떠난다.
2.정현정
학생때 작곡에 재능을 보였던 현정은 시부모님 모시고 사는 평범한 주부다.
평범하다기엔, 해도해도 음식 솜씨가 늘지않는 주부다.
친구가 반갑게, 흔쾌히 맞아주었지만 시부모님까지 계신 집에 얹혀살자니 미소는 첫날부터 눈치가 보인다.
그래도 과거 밴드 활동을 회상하며 행복하게 수다를 떠는 둘.
키보드도 참 잘치고 곡도 참 잘만들던 친구는 고된 집안일에 치여 수다 중 잠들어버린다.
세끼 대식구의 밥상을 차리고 치우는 일에 지친 친구를 위해, 미소는 밥을 해두고 떠난다.
3.한대용
함께 밴드를 했던 남자 후배다. 미소의 처지를 이해하며 신혼부부의 안방까지 내준다.
그런데 집 안에 부인이 보이지 않는다.
집 상태도 완전히 엉망.
사실, 갑작스런 아내의 변심으로 이혼한 후배는 대인기피증 걸려서 친했던 누나와도 얼굴을 마주보지못할 정도로 폐인이 되었다.
아침에는 멀쩡하게 양복을 입고 출근하지만 밤은 눈물과 술로 지새운다.
월급 190을 버는 후배는 대출을 받아 한달 이자가 100인 아파트를 샀다.
100만원씩 20년을 내야 겨우 후배의 집이 된단다.
아파트에 살고싶다던 아내의 마음을 얻기위해 이렇게까지 노력했는데....
아내는 텅빈 집에 남편만 남기고 떠나버렸다.
아내와의 끔찍해진 추억을 피해 이사가고싶어도 빚때문에 갈 수 없다.
미소는 이 집에서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고 슬픔을 함께 나눈다.
그래도 지금껏 머물렀던 집 중에 가장 안락하고, 또 집주인의 상처도 보듬어줄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미소는 다른 집을 찾아나서게 된다.
그 이유는 바로 미소의 남자친구.
결국 남자친구의 반대로 미소는 네번째 친구를 찾아가게된다.
그리고 후배를 떠나기 전에 헌혈해서 얻은 초코파이를 선물로 주고 간다.
"이제 누나 가려고.. 마지막으로 담배 한대만 같이 피자."
"누나가 가끔 청소해주러올게. 울지말구."
이 대사를 할때 느낀건데 이솜 목소리가 참 좋다.
고아성 목소리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남자친구를 안심시켜주려 다시 길거리로 나온 미소.
이제 24시간 카페에서 커피한잔을 시켜좋고 테이블에 엎드려 잠을 잔다.
머리는 화장실에서 감고 핸드드라이어로 말린다.
4.김록이
드디어 네번째 지인을 만나러 온 미소.
오랜만에 집에 젊은 아가씨가 온다고해서 솜씨좀 발휘하셨다는 선배의 어머님.
집안 유전병도 없고, 우리는 교양있는 사람들이라며 호호홓 웃는 부모님이 사람 좋아보인다.
추운데 나가지말고 담배도 안에서 피라는 배려 갑!
모두 함께 '즐거운 나의 집'노래를 연주하며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내는데...
깜빡하고 미소가 머물기로 했던 방에 고추를 널어 말려버린 록이네 부모님!
어쩔수 없이 미소랑 남자선배랑 같은 방에서 자게된다.
전립선이 안좋아서 아무짓도 못하니 안심하라던 선배는
라며 뻘소리를 한다.
내 부모는 아들의 결혼이 소원이라며 연애는 다른 놈이랑 하더라도 나랑은 결혼해서 서로 안정감만 찾자고 말함.
ㅎ...차원이 다른 돌아이..
"집 없어서 내가 만만해?"
집이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는 미소를 붙잡은 선배. 농담이었다고 사과를 하는 통에 못이기는척 그냥 잠드는데....
깨어나보니 집 문이 전부 밖에서 잠겨있다.
알고보니 둘을 한 방에서 자게 만든것부터 모두 계획된 일.
노총각 아들을 어떻게든 장가보내기 위해 미소를 잡아둔 거였다.
3번 후배 남동생네 집에 그냥 있을 걸 그랬다.
생활공간도 완전히 분리돼있고 후배도 미소의 도움이 필요했고ㅠㅠ
다행히 미소는 열린 문을 통해 탈출에 성공한다.
그래도 그 와중에 부모님께 감사편지는 적어놓고 탈출 ㅋㅋㅋㅋ
5.최정미
대학시절, 정미가 다단계에 빠져 빌린 돈을 미소가 갚아줬었다.
대궐같은 집에 깨끗한 방. 좋은 언니.
더할 나위 없어보이는 더부살이다.
드디어 돈이 모인다.
디스 대신 좋아하던 에쎄를 필 수 있게됐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공장에서 일하면서 웹툰 작가를 꿈꾸던 남자친구 한솔의 사우디아라비아 발령.
최소 2년이란다.
"그림도 해볼만큼 해봤고, 너랑 사람답게 살려면 돈을 벌어야한다"며 지원했다고 했다. 생명수당이 있어 월급도 세배다.
주변이 온통 사막이라 돈 쓸일도 없다.
2년에 5천만원은 모을 수 있다.
자기가 돌아올때까지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남자친구.
일단 미소가 잠시라도 얹혀 살 안전한 곳을 찾았으니 얼른 돈을 벌어서 미소와 결혼할 생각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진다.
정미언니는 남편에게 굽신거리며 산다.
예전과는 다른 조신한 아내의 모습이다.
심지어 남편이 있는 자리에서는 긴장되고 불편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셋의 술자리에서 미소는 그만 말실수를 하고만다.
라는 물음에 기타를 잘치는 뜨거운 사람이었다고 대답을 했는데...
도대체 뭐가 맘에 안든건지,
조신한 과거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남편의 표정이 안좋다.
정미언니 표정은 더 안좋다.
결국 언니는 보증금에 보탤 돈을 주며 미소에게 집을 나가라고 한다.
니 형편에 담배랑 위스키가 웬말이냐며 철들라는 잔소리까지 덤.
필요없다며 돈을 두고 그 집을 나오는 길.
서럽다.
처음으로 편지도 없이 나와버린다.
심지어 하던 청소일도 잘린다.
미소는 그녀를 위로해주고 먹고싶다는 닭백숙까지 해준다.
도대체 왜이렇게 착한건지..
착해서 마음이 아프다.
철면피 기생충이라고 부르기에 미소는 너무 착하다ㅠ
꼭두새벽, 남자친구를 배웅간 미소.
떠나기전에 가서도 그림을 놓지말라며 작은 선물을 해준다.
이제 다시는 안그린다는 남자친구에게 거기 생활을 웹툰으로 그리면 재밌지않겠냐며 결국 드로잉 노트를 쥐어준다.
이제 어디로 갈거냐고 걱정하는 남자친구에게 갈 데 많다며 힘찬 모습을 보여준다. 남자친구도 애써 눈물을 참으며 발걸음을 돌린다.
내가 못나서, 내가 거지라서 그렇다라고 자책하던 남자친구는
그렇게 꿈도 사랑도 전부 포기하고 생명을 담보삼아 돈을 벌러 떠난다.
"내가 잘 벌면 너랑 맛집데이트도 하고, 남들 하는것도 하고 그럴텐데..."
이미 열심히 살고있고, 이미 최선을 다해 꿈을 쫓고 있는데 그래도 자신을 자책하는 중인 이 청춘을 어찌하면 좋을까ㅠ
벌이마저 없어진 미소는 이제 코인 빨래방에서 밤을 보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찾아온 단골 위스키가게.
그런데 위스키 한잔의 가격도 2000원이 올랐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딛고 서 있는 자리가 점점 좁아오는 것 같은 답답한 느낌이 밀려온다.
"그래도 한잔 주세요."
미소는 눈이 내리는 걸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록이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
"그래 이제 누구 한명 죽어야 보는구나~"
라는 자조섞인 농담을 주고받는 친구들.
"미소는 안왔어??"
"폰이 끊긴것 같애"
"사정이 나아지면 연락되겠지."
친구들은 각각 자신을 찾아왔던 미소에 대해 얘기를 하면서.. 웃음을 짓는다.
"미소는 참 한결같애. 생각만 해도 미소가 나오지않냐?"
나는 이 장면이 약간 경멸스러웠다.
특히 록이와 정미는 미소한테 돌이킬수 없는 상처를 줘 놓고...
추억의 간식 거리로 미소를 곱씹고 있는 것 같아서 불편했다.
극적인 스토리는 아니지만, 나 혹은 내 주변 어딘가에서 본 듯한 인물과 이야기라서 더 슬프게 와닿았다.
이어서 도시의 여러 풍경이 지나가고 익숙한 위스키 가게 앞, 백발의 미소가 담배를 들고 지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녀가 하루의 끝에 도착한 곳은 바로, 한강의 텐트.
아주 조그마한 보금자리.
정말 부제목에 부합하는 엔딩이다.
영화은 이렇게 끝이 났다.
미소가 그 후로 어떻게되었는지, 미소의 남자친구는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는지는 알 길이 없다.
볼때는 재미있었는데, 글로 쓰자니 너무 길고 지난한 스토리라서 포스팅하는데도 한세월 걸렸다.
줄거리, 결말을 다 알더라도 볼만한 영화이니, 구질구질한게 끌리는 청춘은 휴일에 이 영화를 한번 보는 것도 좋겠다.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을 평가하는 시선들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마침 있는 돈 없는 돈 짜내서 여행중인데, 스스로에게도 한번 질문해보고 싶어졌다.
'오늘 하루는 나에게 과연 꼴값이었는지.'
이 블로그의 다른 [영화]소개 보기 ▼
[영화] - 영화 [라이프] 줄거리,결말,베놈과의 연결점
[영화] - 영화 <기생충>, 내맘대로 세 가지 해석 키워드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라이프] 줄거리,결말,베놈과의 연결점 (0) | 2019.07.09 |
---|---|
[스파이더맨2:파 프롬 홈] 후기 및 줄거리, 주관적 평점, 추천 (0) | 2019.07.09 |
영화 <기생충>, 내맘대로 세 가지 해석 키워드 (0) | 2019.06.06 |
[어벤져스 앤드게임]보기전에 보면 좋을 관람 후기(스포없음, 쿠키영상 없음) (0) | 2019.04.24 |
영화 [Us 어스] 줄거리, 결말, 해석, 감상 (0) | 2019.03.30 |